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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과 취재수첩

<칼럼> 장성택 실각설과 독일군의 이니그마

 

<칼럼> 장성택 실각설과 독일군의 이니그마

 

 

최근 북한 장성택 측근들이 처형을 당하고 그가 실각했다는 소식이 국정원을 통해 공개됐습니다. 이후 장성택 실각에 관한 정보 입수 경위가 보도를 통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는 상당히 우려스럽게 생각됩니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2차 세계대전 영국의 이니그마 해독작전이 떠올랐습니다. 이니그마는 독일군이 만든 암호체계로 이것을 해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앨런 튜닝이라는 천재 수학자가 콜로서스라는 초기 컴퓨터를 개발해 이니그마를 해독할 수 있게 됐습니다.

 

영국 정보국 수장은 '우리가 이니그마를 해독했습니다'라고 말하거나 '이니그마 해독으로 이런 정보를 얻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영국 정부는 콜로서스로 이니그마를 해독하고 있다는 사실을 철저히 비밀로 했습니다. 그러던 중 영국 정부는 독일군의 함선 공격 소식을 해독하고 고심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응하면 독일군 암호를 해독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국 정보부는 눈물을 머금고 해독된 내용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이 왔습니다. 전쟁의 성패를 좌우할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준비하면서 영국 정부는 독일군이 연합군 상륙 장소를 칼레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해독했고 노르망디에 상륙하는 허를 찌르는 전략으로 승리했습니다.

 

영국이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한 사실은 전쟁이 끝난 뒤에야 공개됐습니다. 영국 정부가 인내심을 갖고 첩보전을 했기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성택 측근들에 관한 내용은 너무 빨리 알려졌습니다. 더구나 정보수집 방법까지 알려지고 있습니다.

 

장성택 측근들이 11월 29일 처형을 당했는데 며칠 후인 12월 3일 정보가 공개됐습니다. 정보공개의 기간을 오래두는 것은 정보가 어느 정도 확산돼서 상대방이 정보 출처를 확인하기 어렵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빨리 정보가 공개된 것입니다.

 

정보 출처가 나오는 것은 더 문제입니다. 감청부대에서 내용을 감청하고 북한 내부 고위층 휴민트를 통해 확인했다는 내용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언론에 보도된다는 것은 국정원, 통일부, 청와대 등 정부 관계자들이 이야기를 했다는 뜻이겠지요.

 

이렇게 되면 북한은 감청에 대비해 암호체계와 장비를 바꿀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 누가 정보를 흘렸는지 북한 내부에서 감찰이 실시되고 휴민트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과거 김정일의 병세가 나아져서 직접 칫솔질을 할 수 있을 정도라는 내용이 국정원에서 국회의원들에게 전달되고 다시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그것 때문에 북한에서 그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전부 감찰을 받고 상당수가 숙청됐다고 합니다. 즉 인적 라인이 끊어진 것입니다.

 

과거에 이런 사례가 있는데 또 다시 국정원과 정부가 너무 빨리, 너무 많은 정보를 제공한 것이 아닌지 우려됩니다.

 

영국 정부가 이니그마 해독 사실을 철저히 숨겼던 이유를 대한민국 정부와 정보조직도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강진규 기자 wingofwolf@gmail.com